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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개발자
어쩔수가없다(2025) : 고리타분한 정상이라는 프레임 본문

영화에 앞서, 종이를 먼저 말해볼까 한다.
종이.
아무래도 취미가 취미인지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기록적인 요소이다. 질 좋은 종이, 그리고 그걸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공책이나 수첩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아이템이었다.
여기에 뒤이어 떠오르는 건, 뭐랄까, 약간의 고리타분함? 아무래도 이제 와서 종이는 고전적으로 사용되던 그 용도의 최전방에서는 살짝 뒤로 물러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우선 책에서부터 그렇다. 나부터가 무조건 종이책, 을 고수하던 것이 벌써 어언 옛날이 되어버릴 정도로 어느새 꽤 많은 지분이 ebook으로 대체되었다. 기록? 번거롭게 종이뭉치 수첩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늘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이 그 쓰임새를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적어나가고 있자니, '약간의'라는 수식어도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가슴이 쓰라리다고나 할까.
만약 내가 현대의 책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일선에서 물러나 창고에 박혀있는 것이 옳을까? 그 옛날의 휘황찬란한 위세를 뒤로 하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으로 기꺼이?
...근데, 정말 그 방법 뿐일까? 그저 창고 속으로 밀려나는 것만이 책에게 남은 선택지일까. 사실 이 선택지야말로 누군가가 주입한 프레임의 영향이지 않을까. 소용을 다한 수많은 레트로 기기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요즘에는 그 단일화된 새드엔딩이란,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유머,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이 지점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우선 주인공 만수의 상황. 외국 기업에 인수된 태양제지 입장에서 만수는 고리타분, 즉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당한다. 그 지목이란, 회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 뿐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완벽해 보이던 일상이 불완전으로 거듭나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다. 그 변화는, 만수가 가지는 집안에서의 입지도 흔든다. '돈 벌어오는 가장'이라는 고리타분한 직위는 해제된다.
이 위기에 대해 만수는 극단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을 취한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넘어뜨리는 것. 전통적인 위계적 줄 세우기와 개천에서 용 난다는 기만적인 환상. 그를 물질화한 북한제 권총을 들고서 그는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해결책을, 만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마치 정답이 있는 문제지를 푸는 것처럼.
문제지. 그의 최종 목적지가 그가 행하는 일련의 과정인 재귀적인 상황인 셈인데, 이도 참 재미있는 유머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적인 면모 역시 고리타분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의 아내와 자식은 서로를 꼭 껴안으며 가족은 똘똘 뭉쳐야 한다는,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의식을 연출한다.
이 고리타분함은 그 모든 상황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만수를 감싸던 가부장적 지위는 추락하면서 온갖 의심과 추함을 드러내는 역설적 지위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적수들을 줄 세워서 제거하는 건 또 어떤가. 만수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 제거 과정에서 함께 거세되어 간다. 동료들의 의사를 기꺼이 대변하고자 하던 그의 모습은, 후반부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를 잘라낸 태양제지가, 직원들을 순서대로 줄 세워서 뒤쪽부터 댕강 잘라낸 것과 완전히 일치되는 모습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밟고 서야 한다는 고리타분함. 그리고 그건 어쩔 수가 없다는 고리짝 시절 변명.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해치워야 한다는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가며 반복된다. 이 아이러니는 나무를 잘라서 종이를 만드는 만수의 취미가 분재라는 점, 그리고 그 분재실에서 마치 나무를 자르고, 분재의 수형을 만들어내듯 고시조의 시체를 다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정상'이라는 이름의 고리타분함은 그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겉보기엔 단란하기 그지없는 평범한 가정이지만, 아내는 끊임없이 만수의 의심을 유발하고, 아들은 만수의 친아들이 아니며, 딸은 자폐적 성향을 가진다. 정상에 대한 집착은 딸이 끊임없이 다른 이들(고리타분한 기준으로는 정상이라 할 수 있는)의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에서 소리는 과정의 은유이다. 공장은 큰 소리와 함께 가동된다. 정리해고 대상들은 소리 한번 못 내고 잘려나갔다. 만수는 총소리와 함께 자신보다 앞서는 이들을 제거한다.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종이의 제작 과정은 엄청난 소음을 유발한다. 소리를 내는 측은 늘 '정상', '고리타분함', '위계질서'의 가해자들이다. 사실은 반대여야 하는데도 말이다. 과정은 기존의 프레임을 공고히 하기 위해 떠들썩하다. 뉴스, 유튜브 등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기득권층을 독려하는 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소리는, 정말로 잘 동작하는 소리는, 결국 만수의 딸의 손에서 펼쳐진다. 정상과 아득히 떨어진, 고리타분한 시각으로는 '돈을 잔뜩 들여야 겨우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만수의 딸은 자신만의 룰로 그린 오색빛깔 악보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음미하듯 소리를, 과정을 공기 중에 그려낸다.
그에 대비되는 마지막 시퀀스. 만수가 시끄러운 공장 속에서, 노이즈 캔슬링과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기괴하다. 과정을 노이즈 캔슬링하고, 기존의 정상을 공고히 한 만수가, 언제까지고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비단 공장 내에서의 자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가 의심하고 괴로워하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그의 정상은 또다시 박살 나고 말 것이다.
당장은 그 의심스러운 모든 것들을 나무 아래 숨기고, 정상가족의 행색으로 다 같이 얼싸안고 똘똘 뭉치는 척 하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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