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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내가 쓴 글/영화 리뷰 (9)
스토리텔링 개발자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 응당 그렇다고들 한다. 밤은 가끔, 그렇게 통과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되곤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절반은 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길고 긴 시간들이 그저 통과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니. 아깝기 그지없는 시각이지 않은가. 영화는 그 통과 과정으로써의 '밤'을 잔잔하게 고찰한다. 새벽의 모든, 이라는 제목에서 그 야심이 느껴진달까. 새벽에 닿기 위해서는 밤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새벽은 그렇게 결국 밤을 통과하였고, 이어서 아침을 향해 달려간다. 새벽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니, 그 포부가 상당하다고밖에. 밤은 해체의 시간이다. 하루동안 단단하게 유지해야 했던 것들은 여지없이 스르르 풀어진다. 약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가감 없이 내보인다...
골조가 없는 채로 건물을 세울 수 있을까? 관계, 그리고 상황들 역시 그럴 것이다. 우리는 골조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맥락들을 읽어낸다. 이 상황이라면 의당 그럴 것이라고 믿는 구석들은 관계와 상황의 기초가 되어서 착실하게 형태를 구성해 나간다. 예컨대 소설에서는 클리셰라는 것이 바로 그 골조에 해당할 것이다. 상황과 상황 사이를 적절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그 클리셰가 없다면 소설은 종횡무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맥락으로 우리를 혼란시키기만 할 것이다. 즉, 적절한 클리셰(골조)는 소설(건물)의 형태를 굳건하게 세워준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어느 등산가가 정상에서 세 번 머리를 박으며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다. 사건의 맥락은 일목요연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추억하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계속해서 반복해서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보면 추억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잠깐 떠올렸을 뿐인데도 시원한 바다와 청명한 하늘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습하고 짠 공기, 흔하디 흔한 흘러간 여름 노래들이 코와 귀 앞을 맴돌고, 바스락거리는 모래와 축축한 자갈의 맨들맨들한 질감 같은 것들이 왠지 손 끝에 남아있는 듯하다.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계곡물에 담가둔 수박, 텐트,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 자글거리는 삼겹살 굽는 소리 같은 게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반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계절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힘겨운 계절이 여름이기도 하다. 윙윙..
아직 분가를 하지 않았을 시절. 분명히 내가 어딘가에 잘 보관했다고 생각한 물건이 사라져 있는 상황이 왕왕 있었다. 누가 어디로 옮겼을까. 썼으면 원래 자리에 잘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동생인가? 아니면 방을 정리하던 중 엄마가? 당혹스러움이 분노로 변하는 과정은 점진적이면서 격정적이다. 그리고 한참 분개하며 방을 이리저리 들쑤시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물건이 등장하는 상황. 그곳에 그 물건이 있는 이유가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스쳐 지나가고 그 범인이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속을 가득 불태우던 그 감정은 물에 녹는 솜사탕처럼 사르르르 녹아버리는 바로 그런 상황. 상황 자체는 변한 것이 없지만 마음속은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즉, 상황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마치 '가족'..
요즘 세상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다. 핸드폰에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결제가 되는 데다가 우리 집 앞까지 배달까지. 국내에서 사는 건 거의 하루 만에 배달이 완료되고, 해외 배송이라도 일주일이면 거뜬하다. 저 먼 곳 어느 창고에 쥐 죽은 듯 쌓여있었을 물건이 순식간에 그 운명을 탈바꿈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걸리는 과정 치고는 너무 숨 막히듯 급박하다. 하지만 이런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 때문에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내가 겪은 일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내 이전 주소로 오배송 시켜버린 것이다. 구매 플랫폼이 워낙 다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소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소를 미처 채 챙길 틈도 없이 휘몰아치며 구매를 완료하라고 닦달하는, ..
온통 흐릿한 곳에서 명확하게 펼쳐진 길이 있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르게 될까? 예컨대 어두운 밤. 달빛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이 단 하나의 길을 비추고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걷게 될까? 빈센트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부적격이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공 수정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자연 분만을 통해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특징들을 마치 찰흙 주무르듯이 매만져서 정형화된 특징들만 남기는 작업. 인간의 구조에 자본주의와 공장이 결합하여 주입된 사회에서의 그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마치 로또 랜덤 뽑기를 하듯이 자식을 낳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빈센트의 부모는 그렇게 했다. 프랑스의 리비에라와 같은 이름의 자동..
변화는 과연 어떻게 일어난다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매일 매일 변화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자라고, 세포가 죽고 새로 생겨나는 식으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순간마다 변화한다. 아마 십몇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교컨대 테세우스의 배 문제에 봉착해 있다. 나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우선 범위를 조금 좁혀서 이렇게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우리는 자의로 변화하는 걸까? 아니면 타의로?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다. 우선 자의의 범위부터가 애매하다. 사회에 귀속에서 어떤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 그 질서 속의 자의란 어떻게 보면 타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타의라고 단정짓기에는 왠지 나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적어도 변화를 '..
김지운 감독님의 초창기 작으로 반칙왕(2000)이라는 영화가 있다. 무슨 영화인고 하면, 평범하지만 무기력한 은행 직원 임대호가 프로 레슬러로 데뷔하는 내용이다. 다음(Daum) 영화에서 개요를 따오자면 아래와 같다. 은행원 임대호(송강호)는 은행 창구를 지키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살맛 나는 일이라곤 지지리도 없다. 지각도 잦고 실적도 없어 부지점장에게 욕먹고, 그의 헤드록(목조이기) 기습에 당하기 일쑤며, 짝사랑하는 은행 동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의기소침하게 지내던 임대호가 엉뚱하게 찾은 해방구는 '장칠삼 프로레슬링 체육관.' 어린 시절 반칙 레슬러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를 좋아했고, 상사의 헤드록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던 그는 레슬링을 배우러 나선다. 레슬링 고수 유비호와의 시합에 나설 반칙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