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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개발자
새벽의 모든(2024) : 같은 밤이나 같은 아침은 존재하기 힘들다 본문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 응당 그렇다고들 한다. 밤은 가끔, 그렇게 통과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되곤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절반은 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길고 긴 시간들이 그저 통과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니. 아깝기 그지없는 시각이지 않은가.
영화는 그 통과 과정으로써의 '밤'을 잔잔하게 고찰한다. 새벽의 모든, 이라는 제목에서 그 야심이 느껴진달까. 새벽에 닿기 위해서는 밤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새벽은 그렇게 결국 밤을 통과하였고, 이어서 아침을 향해 달려간다. 새벽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니, 그 포부가 상당하다고밖에.
밤은 해체의 시간이다. 하루동안 단단하게 유지해야 했던 것들은 여지없이 스르르 풀어진다. 약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가감 없이 내보인다. 후지사와가 PMS로 인해 해체되는 시간이 그렇듯, 야마조에가 공황장애로 발작을 일으키는 순간이 그렇듯, 밤은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고 잔인한 시간일 것이다.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건 공포로 작용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몸짓을 그 누가 유쾌하게 받아들일까. 덩그러니 어둠 속에 놓여 있는 감각, 누군가가 내 몸을 언제 찬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들은 이 밤이 지나길,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이 곧 고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는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여러 가지 밤들을 조망하며 흘러간다. 마치 지구의 자전처럼. 온통 어둠만 짙게 깔린 것 같은 밤 속에서 확실한 빛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별빛 말이다.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저 북극성이나 카시오페이아 같은 것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앞서 밤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이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그 별들을 바라보는 과정을, 그러니까 휴대폰과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는 중에 북극성의 방향에만 의지해서 조향 하는 배에 비유하여 제시한다.
영화의 시작에는 나중에서야 알 수 있는 복선이랄지, 숨겨진 후지사와의 이야기가 있다. PMS로 인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수리하는 과정을 잠깐 보여준 후 급히 5년의 시간을 스킵하는데, 그 스킵된 5년이 바로 그것이다. 후지사와는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밤을 견뎌내고 있겠거니, 시청자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인지하게 만드는 트릭이랄까. 하지만 후지사와는 그 5년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쿠리타 과학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는 방법을 익혀왔다. 또 PMS 증상으로 인해 어떤 사건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걱정 어린 시선은 철저히 배반당한다. 그의 PMS 증상은 그저, 이따금 일어나는 지진과 정전 정도의 해프닝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그 증거라고 해야 할지. 야마조에가 처음 회사에서 발작을 일으켰을 때, 야마조에를 집에 바래다주며 하는 말과 행동에는 확실한 뼈가 들어있달까. PMS와 공황장애는 다르지 않냐는 야마조에의 말에도 웃음으로 일관할 수 있고, 더군다나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음식들을 건넸다.
"돈은 괜찮아. 내가 선배잖아."
밤에 먼저 진입한 이의 여유가 느껴지는 대사랄까.
그 이후로,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에게 밤을 건너는 법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제시한다. 누구의 밤이 더 깊고 어두운지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극성은 누구에게나 확실히 빛을 비춰주고 있기 때문에. 비록 날씨가 어두울 수는 있겠지만, 절대 없을 리 없는 그 빛이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에.
물론 밤이란 이 둘에게만 있는 시간이 아니다. 야마조에의 이전 직장 상사는 아내를 잃었고, 쿠리타 과학의 사장은 동생을 잃었으며, 후지사와의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하다. 물론 이들의 좌절의 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밤을 건너보았기에, 뒤따라 밤에 진입하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그건 비행기이고, 이게 북극성이잖아? 하고 정정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선의는 까칠하게 날 선 야마조에에게도 타인에게도 밤이 있음을 천천히 이해시킨다.
클라이막스는 역시, 어둠 속의 각각의 빛들을 다른 이들 눈앞에 생생하게 선보이는 '이동식 플라네타륨 프로그램'이다. 야마조에의 각본과 후지사와의 진행뿐 아니라, 쿠리타 과학 사장의 동생이 남긴 이전 프로그램의 자료들까지. 여러 사람들의 밤을 종합한 클라이막스이다. 다들 각자의 밤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그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후지사와는 수첩에서 발견한 글귀를 읽는다.
"하지만 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구 밖 세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빛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어두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같은 밤이나 같은 아침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했다. 후지사와는 본가 쪽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야마조에는 쿠리타 과학에 남기로 결정한다. 같은 밤 아래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들. 다른 방향일지라도 그 방향이 새벽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둥글다고 했었지 않나? 다른 방향으로 갔다고 한들, 같은 곳에서 만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야마조에의 머리를 잘라주기 위해 후지사와는 깜짝 방문을 했다고 하니, 역시 지구는 둥글구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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